Thursday

#00
출근길 지하철을 타고, 사람이 제일 많은 시각 제일 바쁜 장소들을 다녔다. 아침부터 시작한 미팅은 두시간을 정확히 채운 후 마무리가 되었고, 한 달만에 영어로 대화를 해서 그런지 머리가 아찔했다. 근처에 있던 운현궁에 가 한복을 차려입은 마네킹들이 보이는 마루, 들어가지 말라는 안내문을 옆에 두고 나란히 앉았다. 어쩌면 그 곳에서의 시간은 오늘 서울에서 가장 고요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아무런 기억이 없다. 내가 무엇을 하기로 했는지도 잊어버렸다. 

#01
하루종일 사람이 많은 곳만 찾아다니는것처럼 서울엔 종일 사람이 많았다. 서울시청 잔디에서는 김장축제준비를 하고 있었고, 롯데월드 냄새가 났던 청계천에서는 랜턴축제를 하고 있었다. 서로 같은 나이 또래로 보이는 아주머니 무리는 각각 국정화 교과서 반대파와 찬성파의 조끼를 걸친채 서로를 견제했고, 옆에 있던 할아버지들은 남북통일을 외쳤다. 횡단보도 건너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노조집회 중. 형광옷을 입은 군인청년들, 그 옆에는 종교책자를 들고 있는 몇몇의 사람들이 오랜시간 서 있었다. 나는 그들을 보았고, 그들도 나를 본다. 나는 기운이 빠져 앉을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다녔고, 그렇게 그들과 몇번을 마주했다. 듣고 싶지 않은 내용들이 너무나 많았다.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으면서도, 술을 한잔 하면서도. 다들 너무나 힘들어 한다. 힘들어하는 얘기를 하면 할 수록 힘들고, 듣고만 있는 나도 힘들다. 한국에 없던 일년간 듣지 못한 이 푸념들을 한번에 들으니 힘들다 생각하다가. 그 일년동안 매일을 그런 대화밖에 할 수 없는 그들이 안타까웠다. 신문 기사에도, 친구들도 해외로 떠나려한다. 왜 돌아왔냐고. 내가 하는 말이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될 것 같아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02

한국에 온 지 한 달이 되었고, 모든 것들이 나를 재촉하고 있음을 알았다. 여행에서 돈을 다 쓰고왔고, 정해진 일자리도 없다. 사업을 하기에는 자금이 없고, 정확한 방향도 만들지 못했다. 한달 전까지 나는 완벽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의 내 시간을 보냈고, 미래에 대한 어느 정도의 계획을 그려보았지만, 돌아온 이 곳에서의 모습은 그때와 다르다. 나에게는 다시 또 그만큼의 변화에 대한 시간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미래에 대해 물어온다. 이제 가게를 차릴 것인지, 회사를 다닐 것인지, 한국에 계속 살 것인지, 제주에 살 것인지, 서울에서 살 것인지, 결혼을 할 것인지. 나는 아직 정해진게 없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일년이면 충분하지 않느냐 되묻는다. 내가 하는 말이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될 것 같아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