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편지를 쓰기에는 이대로 가만히 있고 싶기에.
#01
미뤄둔 빨래를 한번에 돌렸다. 이불 커버와 시트와 배게커버까지. 영화 한편을 천천히 보면서 건조까지 끝낸 빨랫감들이 따뜻하고 바스락거렸다. 따뜻함과 바스락거림이 사라지기 전에 옷을 벗고 이불속으로 들어가본다. 따뜻하고 바스락거린다.
#02
이제 딱 한달.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작정하고 내려간 제주의 시간만큼 이곳에서 지냈다. 그 때의 시간은 광속처럼 흘러 참 많은 일들이 가득한데, 이 곳의 시간은 달팽이 만큼 느리게 흐르고, 조각들이 적다. 지금의 이 마음은 두려움이 분명하다. 달팽이 만큼의 시간을 홀로 보낸 내가 광속의 시간으로 돌아가 많은 변화를 한번에 맞이 해야한다. 조카가 태어났고, 부모님은 주름이 몇개는 더 늘었을테고, 고맙던 분을 이제 더는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연애가 끝났고, 누군가는 행복을 바라며 연애를 시작한다. 돌아오지 않을 것 같던 친구를 한국에서 만나게 될 것이고, 지난 사람들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옆자리에 서있을 것이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그 모든 것을 마주 할 수 있을까.
#03
한국에 가면 또 한동안 참 많이 울며 웃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