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이 여행이 끝나면 난 뭘 만들어 낼까.'
2년 전 여행의 마지막 즈음, 이 곳에 남겨둔 한 문장은 이번에도 동일하다. 디자이너로의 첫 직장을 스물 여섯 생일에 그만두며 참 많은 축하를 받았고, 며칠 후 홀로 캐나다로 떠나와 한달을 보냈다. 그 여행의 끝에는 잔고 0원과 여행 후 깊은 우울감, 그로 인한 제주로의 이주가 있었고, 지금 이 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다시 한 번. 이 여행이 끝나면 난 뭘 만들어 낼까.
#01
얼마 전 우연히 그의 사진을 보았고, 그의 반지를 보았을 때는 아주 큰 요동이 있었다. 밥 먹는 것도 잊고, 하루 종일 몸을 혹사시켰다. 오늘은 그와 궁금하지 않던 그의 옆에 있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마냥 헛웃음이 났다. 한동안 멍하니 웃다가, 대단한 각오로 '정리를 위한 여행'을 계획한 내가 참 웃겼다. 나를 바라보던 그를 기억하는 나는 어쩌면 그때의 기억만으로 살아가려고 했었는지 모르겠다. 행복한 순간들 속에 사로잡혀 마치 애뜻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그런 신파. 너무나 흔한 커플 사진 속 그는 내 기억의 그가 아니다. 기억속의 그는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다. 그 때, 모든 것이 잡히지 않는 가루로 흩뿌려졌다. 진공의 상태로 일년을 보냈다. 진공이 아닌 바람을 마주하는 '정리를 위한 여행'이 '시작을 위한 여행'으로 변한 한 순간.
#02
고마웠고, 원망했습니다.
언젠가 한번은 마주치겠지요. 그 때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가볍게 웃으며 마주하기로.
#03
마지막 계절이 흘러가고 있으며, 디데이가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