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애기 때부터 봐온 바둑이는 이제 커서 중성화 수술을 한 고양이가 되었다. 애기 때의 바둑이는 솜털이 보송보송하고, 발톱이 날카롭고, 골판지로 만든 바둑랜드 안에서 뛰어다니고, 그러다가 배가 땅땅해질때까지 사료를 먹고 배를 보인채 잠이 드는 고양이였다. 여느 새끼동물이 그렇듯 눈은 동그랗고 얼굴은 작고, 난 너무 귀여워서 말그대로 품속에 넣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후드안에 넣었을때 집에 와보면 발톱에 구멍이 숭숭 나있기도 했지만, 그래도 가끔 후드 안에서, 내 무릎위에서 잠든 바둑이를 보면 난 그 상태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릴 때가 기억이 나는지 바둑이는 간난아기를 안듯, 안아줘도 가만히 있는다. (나비는 바로 바둥바둥,) 요즘 바둑이는 어딘가 의기소침해 있고, 기운이 없다. 일하다가 뒤를 돌아보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기도 하고. 조금 지쳐있던 어제 오후에는 바둑이를 꼭 안았는데, 바둑이가 가만히 내 품 속에서 있다가 졸기도 했다. 그 순간 난 왠지 마음이 편해졌고, 이래서 사람들이 반려자가 아닌 반려동물을 택하는구나, 그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은 느껴진듯 했다. 나와 동물이란,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사이 거북이 두마리와, 금붕어 여러마리, 소라게 세마리정도, 병아리와 메추라기 4마리 정도였고,  금붕어는 어항을 크게 만들었는데 물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떼거지로 죽고, 소라게는 어느날 말라죽어 있었고, 병아리와 메추라기는 일주일을 지난적이 없었고 묘지는 집 앞 놀이터 미끄럼틀 아래 깊이 30cm정도, 거북이의 사망시점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애완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부모님들과, 어린시절부터 '강아지=털=목막힘=사망'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시골에 가서도 누렁이를 만지지는 못하고 늘 한걸음 뒤에서 눈싸움만 했고, 먹을것을 줄 때도 저 멀리서 사과 한조각을 흙바닥에 툭 던져주고, 다가가지는 못했다. 그렇게 계속 지내다가 일하면서 바둑이를 만나고, 사람이 아닌 동물과의 교감을 조금이 나마 느끼고 있다. 아직도  '강아지=털=목막힘=죽음'의 이론을 떨치지는 못하지만, 동물을 보는 나의 시각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음을 알고있다. 근데, 바둑이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