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아주 예쁜 달이 떠있었고, 지구 그림자에 가려지는 모습을 보았다. 천천히 천천히 손톱달의 모습이 되어갔다. 누군가는 그 달의 모습을 보지 못했고, 누군가는 신이나 하얀 입김도 잊은 채 마냥 보았다.
#01
몇 대의 택시를 놓치고 두 번의 24시간 카페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아침인지 밤인지 알 수 없는 시간에야 택시를 탔다. 장교출신 기사 아저씨는 몇 시간 전 역곡에 갔다가 광명사거리까지 갔다온 후 홍대로 다시 돌아온. 승차거부 따위는 해본 적 없는 개인택시 운전 11개월차 아저씨였다. 부모님과 다른 형제분들은 수 십년전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고, 같이 갈 계획이었지만 이런저런 상황들로 이 곳에 남아있었다했다. 11개월 째 택시 운전을 해본 소감은 당신에게는 안맞는 직업이란걸 알았고, 퇴직금을 받을 수 있도록 1개월만 더 하다가, 어릴적 친구가 운영하는 서서갈비집에서 일하실 계획을 갖고 있었다. 서서갈비집에서는 아저씨가 정말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02
두번째로 주문한 녹차(직원은 녹차는 없고 '베이비그린티'만 있다하며 그걸 줬다)를 들고 나왔다. 너무 추웠고 손에 반쯤 식은 녹차가 밖으로 흐를정도로 몹시 떨고 있었다. 그리고 걷고 있었다. 생각보다 밤은 춥고 무서웠다. 나는. 사실. 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03
집에 들어오자마자 잠을 잤다. 몇 시간이 지난 후 아침이 왔고, 전화가 왔고, 받지 않았다. 다시 잠이 들었고 꿈에서 몇번이나 전화가 왔다. 마치 진짜처럼. 나는 미친년처럼 그 속에서 사소한 것 하나하나 집착을 했다. 그리고 일어났다. 다행이 꿈이었다. 다행이 꿈이었으면 했던 것들은 아직도 현실 속에 있었다.
#04
그 밤의 달처럼 그림자 속에 숨고 싶다.